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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차마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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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원
KBS미디어
출시일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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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상세정보

      ▶상세설명

                ■ 상품구성

                   상품명 : 인사이트 아시아 - 차마고도 DVD
                   언 어 : 한국어
                   오디오 : 돌비 디지털 2.0 
                   구 성 : DVD 6 Discs [러닝타임 360분(60분×6편)]
                   정 가 : 49,500원(부가세포함)
                   최저판매가 : 44,550원(정가의 10% DC) 

               ■ 각편별 내용

       

      티벳 남동부 차와룽의 85세 노인 자시송부는 마방의 리더격인 마궈토다. 마궈토는 수십 필에서 백여필에 이르는 마방을 이끄는 경영자다. 그는 윈난의 시솽반나에서 라싸를 거쳐 인도까지 100일이 넘는 길을 수십 차례나 다녀왔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그가 차마고도를 증언한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교역로이다. 당나라때 교역이 활발하게 진행된 이 길은 윈난, 사천의 차와 티벳의 말이 교환되었다고 해서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리게 되었다.
      차마고도는 거미줄처럼 얽힌 길이다. 중국의 서남부에서 티벳,인도에 이르는 이 길에서 가장 험난한 구간이 금사강(장강의 상류), 난창강(메콩강의 상류), 누장(살윈강의상류) 등 3개의 강이 횡단산맥의 설산 사이로 나란히 흐르는 삼강병류다. 4,000미터가 넘는 설산과 2,000m를 넘는 협곡으로 이루어진 지형적 특이함 때문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차마고도상 가장 험하고 아름다운, 삼강병류의 설산과 협곡을 담는다.
      차마고도, 그 이름은 남아 있지만, 그 길의 주역은 사라져 가고 있다. 차와룽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방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 마방이 살아남아 있는 까닭은 적어도 2-3일을 가야만 차가 다니는 도로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농반목의 꺼부촌에는 집집마다 평균 5마리의 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삶의 동반자이자 생존수단인 말과 함께 조로서도(鳥路鼠道) 즉 새와 쥐가 다닌다는 뜻의 좁은 길을 다니면서 삶을 영위한다.
      마방은 수 십 마리의 말과 간마런(말잡이)으로 이루어진다. 마방의 선두말은 항상 2필, 티벳어로 ‘통로요로’라고 하는데 이 말에는 특별한 장식을 한다. 그리고 말에는 항상 방울을 단다. 마방에 관한 모든 것은 노부상부의 전설에 따라 이루어진다. 노부상부는 티벳, 인도, 중국을 잇는 마방의 길을 처음 개척한 것으로 알려진 전설적 인물로 7전8기 끝에 이 험한 길을 개척한 상인이다.
      봄이 되면, 그것도 6월이 되어서야 설산의 눈이 녹는다. 그리고 막혔던 마방의 길이 열린다. 꺼부촌의 마방은 건초와 사료로 겨울을 난 말들에게 신선한 풀을 먹이고 약초를 캐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수십 필로 이루어진 마방은 1,000미터가 넘는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협곡의 산허리를 타고 가다 류소(강의 맞은 편을 외줄로 연결하고 도르래로 강을 건너는 장치)로 강을 건너고, 아직도 눈이 남아있는 5,000미터가 넘는 설산고개를 넘고, 말의 목까지 빠지는 초원의 늪지대를 지나 ‘패모’라는 약초를 캐러 1주일이 넘는 대장정을 떠난다.
       
      꺼부촌에는 아버지가 2명인 아이들이 많다. 30가구중 10가구가 2-3명의 형제가 1명의 처를 공유하는 특이한 혼인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이한 혼인제도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봄에 약초를 캐러 떠났듯이 호두가 익을 때 꺼부촌의 마방은 수십필의 송이를 싣고 집을 나선다. 보리와 옥수수 농사를 짓지만 자급자족할 수 없는 꺼부촌에서 송이는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다. 여름이 되면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산에서 송이를 캔다.그리고 송이, 동충하초, 패모 등을 팔기 위해 마방을 조직하고 길을 떠난다. 그들은 일주일이 걸리는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2-3일 거리의 짧은 길을 가서 얻는 수익보다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차마고도를 있게 한 마방의 동력이다.
      송이를 팔기 위해 떠나는 길은 차마고도의 주 노선을 따라가는 길이다. 또한 이 길은 티벳 8대 신산의 하나인 메리설산(6,740m)의 자락을 넘는 순례의 길이기도 하다. 마방이 떠날 때 마을의 신산에서는 여인네들이 손똥(향을 피우고 기원을 비는 의식)을 올리고, 술라라카(라카는 고개)를 넘을 때, 카와거보(메리설산의 주봉)의 주변을 지날 때 마방은 자신들이 준비해 온 오색천의 룽다(경문을 새긴 천)를 산마루에 건다. 이들에게 마방의 길은 종교적 의식의 일부이기도 하다. 티벳불교와 자연숭배 신앙이 혼합된 이들의 독특한 종교세계를 만난다.
      2007년 7월부터 차와룽에서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이제 마지막 남은 마방의 길 중 하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도로가 열려서 삼강병류 협곡 티벳 사람들의 생활은 편해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옛 선조로부터 이어져 온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운남, 사천에서 티벳 라싸까지 이어지는 차마고도는 1,000년전 티벳불교가 라싸에서 운남, 사천 장족 지역으로 전래되던 길이기도 하다. 티벳지역을 지배하던 토번 왕조 38대왕 치송데짼 시절 인도에서 온 연화생(파드마 삼바바)은 티벳 전역에 토착 종교인 본교를 몰아내고 차마고도를 따라서 불교를 전파한다. 그리고 지금 순례자들은 바로 그 길 차마고도, 즉 연화생의 길을 따라서 티벳 라싸로 향한다.
      사천성 더거현 까링딩의 목동 라빠(32)는 루루(60), 부사(64),처자(28), 거송다와(24)와 함께 순례를 떠난다. 총 7개월 정도 소요되는 2,100여 km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이들은 왜 스스로 고행을 선택하는 것일까? 이들이 순례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최종 도착지 라싸까지 7개월여간 동행한다.
       
      라빠 일행의 순례는 까링딩 마을의 사찰, 까링스(寺)에서 시작한다. 까링스는 더거현의 1,000년 고찰. 문화혁명 때 절 전체가 파괴된 이후 마을 사람들이 작은 건물만을 새로 지어 고색이 사라진 초라한 상태이다. 하지만 까링스는 사천성 장족들에게는 1,000년전 티베트 불교 전래를 상징하는 고찰이다. 티베트 불교의 시조인 연화생(파드마 삼바바)이 까링딩 동굴에서 수행한 이후 이곳에 까링스라는 사찰이 세워진 것. 지금도 까링스 활불(活佛,Living Buddha)은 연화생이 수행한 동굴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행함으로서 그 전통을 따르고 있다.
       
      순례자들은 출발하기 전 활불 앞에서 서언을 한다. 순례 도중 살생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선(善)만을 행할 것이라고 서언한다. 오체투지,즉 온 몸을 땅 바닥에 던지며 매일 6km 정도를 이동한다. 순례자들 중에 ‘부사’는 64세를 넘긴 고령의 나이. ‘루루’와 함께 차자처라는 수레를 끌고 가는 그는 순례 도중에 자신의 목숨마저 던질 각오다. 순례 도중에 죽는 것이 장족들에게는 가장 상서로운(축복받은) 죽음이다. ‘처자’는 순례를 다녀오면 라마 승려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순례자는 자신을 위해 고행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중생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할 때 진정한 선(善)을 행하는 것이며 윤회의 업에서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순례자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그들의 보시를 받고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에서는 오로지 자연에 의탁해 순례를 한다. 장족들은 순례자에게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에게 보시하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순례는 고통에 맞서는 인내의 과정이다. 2006년 12월 말, 티벳고원의 온도가 영하 2-30도 밑으로 내려갈 때 방다의 랑나산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가장 큰 고통과 마주한다. 설원의 산을 오르고 사람을 찾을 수 없는 평원을 지날 때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오로지 신에게 의탁한다. 땅에 부딪혀 생긴 이마의 멍이 굳은 살로 변할 때쯤 그들의 오체투지도 속도를 더한다. 이런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이들은 왜 순례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무엇을 향하여 가는가?
       
      모든 순례자들이 향하는 곳이자 티벳인들이 일평생 한번이라도 순례하길 소망하는 곳이 티벳 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이다.
      그들은 조캉사원에 모셔진 불상을 만나기 위해 먼 순례의 길을 떠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보관되어 있다는 조캉사원의 불상. 바로 이 불상으로부터 티벳 불교가 시작되었다. 630년경 티벳을 지배하던 토번왕조(티벳의 고대왕국) 최고의 영웅인 33대왕 송첸캄포의 위세는 당나라에까지 미치고 당은 그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당시 토번은 신장, 청해, 감숙성과 사천, 운남성의 서쪽 지역을 아우르는 강력한 대제국이었다. 당나라 황제는 이러한 송첸캄포와의 화친을 위해 자신의 막내딸인 문성공주를 그에게 시집 보내는데 그 때 문성공주가 가져온 것이 바로 진신사리 불상이다. 중국학자들은 이 불상의 전래가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송첸캄포의 손자인 38대왕 치송데짼은 인도에서 연화생(파드마 삼바바)을 불러 오고 연화생은 토착종교인 본교를 배척하고 쌈애사란 절을 지어 불교를 전파시킨다. 지금도 쌈애사에는 치송데짼의 흥불맹서비가 남아 있고 연화생을 위한 축제도 이어지고 있다.
       
      라빠 일행은 최종 목적지인 티벳 라싸 조캉사원에 도착해 10만배를 올린다. 절을 하는데만 2개월이 걸린다. 그들은 순례를 통해 티벳 불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티벳 불교의 전통은 순례자들로 인해 지금도 차마고도의 길 위에 살아 있다.

       
      윈난성의 푸얼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로 지난 2001년 기네스 북에 오른 차나무가 있다. 공식명칭은 천가채 1호 고차왕수. 이 고차수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약 2700세. 높이 약 26미터, 폭 역시 20미터가 넘는 커다란 교목이다. 윈난성 남부지역에서는 이렇게 크고 오래된 고차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역 고차수들은 세상의 모든 차나무들의 어머니격으로 여겨지고 있다.

      윈난성은 인종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차를 재배하는 소수 민족은 제각기 다른 차신을 모시고 있다. 란창현 징마이촌의 브랑족은 해마다 4월, 차 수확을 하기 전에 산강제를 지내는데 이것이 바로 차나무신에게 올리는 제사다.
      차신은 처음 브랑족에게 금은보화를 내리면 금방 써버릴 것이요, 소를 내리면 먹어버 릴 것이니 금과 소 대신 이들에게 차나무를 내렸다고 한다. 이들은 신에게 햇차를 바 치며 풍성한 차수확을 기원한다.
      중국 윈난, 쓰촨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문명교역로,차마고도. 그 시작은 중국 당나라와 티베트 토번왕국이 차와 말을 교역하던 역사에서 비롯한다.

      쓰촨성 야안의 오리진 선사가 7그루의 차나무를 심어 중원의 황제에게 차를 바치기 시작한 이후 당나라 때부터 황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차는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는다.
      이후 차는 비단과 함께 중국의 가장 귀한 수출품이 되었다.

      군사력에 있어 당나라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던 토번왕국은 수시로 당의 변경을 침략하여 당나라 왕실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하였다. 이를 견디다 못한 당태종은 서기 641년 문성공주를 토번왕 송첸캄포에게 출가시키는데 이때 문성공주와 함께 불교, 그리고 차가 토번왕국으로 전파되었다.
      풀 한포기 자라기 힘든 불모의 초원에서 차는 유목민들이 비타민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피요 생명”이며 하루도 차를 안마시면 살 수 없다고 한다.
      당나라 이후 중원의 제국들은 북방 유목민족과 싸우기 위해 티베트의 강인한 말이 반 드시 필요했고 토번왕국은 생존을 위해 차를 필요로 했다. 차와 말의 교역은 급속히 번성했고 수천년을 이어 오면서 문명과 문명을 잇는 길이 만들어 졌다.

      중국 역사의 흐름에 따라 숱한 왕조가 교체되었다. 당, 송, 원, 명 청...그러나 이런 왕조교체에도 불구하고 모든 왕조가 일관되게 사용하던 정책이 있다. 이차역마(易茶易 馬) 즉, 차로써 말을 바꾸라는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정책은 약 천 여년간 이어졌을까? 당 나라 시대에는 본격적인 차와 말의 교역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오가는 승려들에 의해 일정량의 차가 티베트로 들어왔고 그것은 일부 승려와 지배계층에만 제공되었다. 이것 이 송나라를 거쳐 원,명,청으로 가면서 본격적인 국가무역이 된다. 여기에는 두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하나는 말이요 하나는 차를 통해 티베트를 장악하려 했다는 것이다.

      “서장인은 버터나 치즈(乳酪)을 좋아하며, 차를 얻지 못하면 곧 병이 생겨 곤란하다. 고로 당.송(唐宋) 이래 이차역마(易茶易馬)의 법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明史.食貨志)

      송나라까지 대등했던 차마무역은 토번왕국의 멸망 이후 급격하게 변화한다. 지역 토호 와 사원의 라마들은 차를 얻기 위해 명나라에 말을 조공으로 바치고 군신의 관계를 서약한다.
      당나라 때 문성공주에 의해 전래된 차는 이제 티베트인의 운명과 티베트의 역사를 좌 지우지 하는 물품이 되고 말았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차마고도의 길들은 일반적으로 8개의 노선으로 나뉘어진다. 그 중 마방들이 주로 이용하던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길, 차마사라는 관청을 두어 국 가가 주도하던 쓰촨성에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길 등이 대표적이다.

      ◆ 윈난성(시솽반나 / 쓰마오 / 대리 / 리장 / 샹그릴라 / 더친) - 티베트 - 네팔 - 인도
      ◆ 쓰촨성(야안 / 대도하 / 캉딩 / 더거) - 티베트 - 네팔 - 인도

      거대한 횡단산맥과 히말라야산맥으로 가로막힌 차마고도는 그 어느 길도 인간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험한 길을 긴 휘파람 소리 하나로 견디며 누빈 차마고도의 주역 들, 바로 마방의 대장인 마궈토와 말몰이꾼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마궈토 선소무. 그는 마방의 회계책임자로 1940년대 윈난성 리장에서 인도까지 차마고 도를 다녔다. 차마고도의 전 구간을 누비고 다녔던 마방들 중 현재까지 생존해있는 유 일한 마궈토이다.

      “나는 리장에서 인도까지 직접 차마고도의 전 노선을 다녀봤다.
      리장에서 출발하여 108일을 비바람 눈보라를 맞으며 라싸까지 갔다.”



      그가 들려준 마방의 노래,

      “부인) 30일 저녁에 결혼하고 초하룻날 길을 떠난다구요?
      당신 정말 양심도 없군요.

      떠나나려거든 나랑 결혼이나 하지 말지,
      나랑 결혼했으면 떠나지나 말지

      마방) 당신과 결혼하느라 빚을 많이 졌네
      가지 않으면 빚을 갚을 수 없어

      부인) 당신이 빚을 졌어도 괜찮아요.
      내가 베를 짜서 빚갚는데 도울께요
      마방) 당신이 천을 짜도 충분치 않아,
      베 짜는 것으로는 담배도 사 피울 수 없어.

      부인) 당신이 빚을 졌어도 괜찮아요.
      노새를 팔아서 갚으면 되지요.
      집 앞에 있는 밭을 팔아서 갚으면 되지요
      돌도 기왓장도 말할 수 있는데 왜 당신은 대답이 없나요?”

      소박한 노랫말에는 당시 말몰이꾼과 마궈토, 그리고 그들 가족의 애환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떠나지 말라는 새신부 앞에서 끝내 마방은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들 앞에 놓인 길, 그 길이 바로 차마고도였기 때문이다.


       
      티벳 망캉현 꺼라촌, 6,000m가 넘는 7개의 설산이 감싸고 있는 고원목장 꺼라촌은 1950년 인민해방군이 마을을 지나간 이후, 외부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말을 타고 나흘을 가야 하는 오지, 꺼라 사람들은 설산아래 초원에서 야크와 양의 젖으로 만든 수유(일종의 치즈)를 만들면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이다.
       
      꺼라 고원목장에서는 매일 아침 젖을 짤 때 야크와 양에게 붉은 소금을 먹인다. 야크 40마리와 양 40마리를 기르는 츠리완디(46)는 붉은 소금이 질병을 막고 번식을 촉진시킨다고 믿고 있다. 붉은 소금은 어디에서 왔을까?
       
      꺼라 고원목장에서는 6월에서 10월까지 1년에 2차례 마을의 19호가 모두 함께 200여 마리의 야크와 말을 이끌고 나흘 걸려 2개의 설산을 넘어 붉은 소금을 구하러 간다. 츠리완디(46)와 30여명의 꺼라 사람들의 야크를 끌고 길을 나섰다.
      붉은 소금이 나오는 곳은 난창강(메콩강의 상류)변 옌징(티벳어 차카롱). 강기슭의 자다촌에는 수십 개의 소금우물이 있다. 이 우물에서 나오는 소금물로 붉은 소금이 생산된다.어떻게 바다가 아닌 내륙 깊숙한 곳에서 소금이 만들어질까? 지각 대변동으로 과거의 바다가 융기하여 이곳의 우물에서 바닷물이 샘솟는 것이다.
       

      자다촌에서만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옌징에서는 자다촌 외에도 하옌징, 상옌징 등 소금 밭을 가진 2개의 마을이 더 있다. 이곳에서는 하얀 소금이 생산된다. 3개 촌의 소금 밭은 수천여 개. 깍아지른 협곡에 만들어진 소금 밭은 옌징 사람들의 강인한 생존의지를 느끼게 한다.

       
      자시용종(23,여)은 12살 때부터 소금을 만들었다. 4월부터 6월까지 가장 좋은 소금인 도화염을 만들 때, 소금 밭에는 10살도 안 된 여자애부터 70살이 넘는 할머니까지 소금을 만드는 일을 한다. 30-40kg의 우물물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소금 밭에 져 나르고, 무거운 소금을 지고 나르는 일은 오로지 여자들만의 몫이다. 고대의 방식 그대로 옌징의 소금은 만들어지고 있다. 옌징의 소금은 태양과 바람, 그리고 여인들의 땀으로 만들어진다.
       

      옌징의 소금밭은 얼마나 되었을까? 티벳족과 나시족이 옌징의 소금을 차지하기 위해 1,000년 전에 전쟁을 했다는 기록에 비추어 볼 때 1,000년 이상된 것으로 추측된다.
      옌징 사람들은 소금밭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을까? 6,740m의 신산 카와거보가 딸을 6,360m의 따메옹에게 시집 보낼 때 옌징 지역의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 치료하라고 따뜻한 소금물이 나오는 우물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옌징의 소금은 아직도 윈난성 북부에서부터 티벳 동부의 강파지역, 그리고 라싸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주요한 교역품이다. 옌징의 소금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마방들이 1년 내내 옌징으로 찾아온다. 또한 옌징의 남자들도 부족한 곡식을 얻기 위해 옌징의 소금을 싣고 마방을 끌고 떠난다. 옌징의 소금은 차마고도의 살아 있는 마지막 교역품이다.
       
      1년 중 소금이 생산되지 않는 때는 장마철이다. 7월로 접어들면 소금우물로 강물이 범람한다. 우기가 지나고 강물의 수위가 줄어드는 10월이 되면 옌징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무너진 소금우물과 소금 밭을 손질하고 다시 소금을 만든다.
       
      매년 정월 보름(장력)이 되면 옌징 사람들은 마을 뒤의 라꽁스(사원)을 찾는다. 소금생산이 잘되길 바라며 소금을 바치기 위해서이다. 또 4월 도화염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라마승을 집으로 부르고, 7월 도화염 생산이 끝날 무렵 마을 뒷산에 올라 룽다(불경이 새겨진 오색천)를 걸고 신산(神山)에 기원을 한다 소금이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고 옌징에는 다시 마방들이 몰려든다. 이들을 옌징에 불러들인 것은 소금이지만 이제 옌징에서도 식용으로는 예전만큼 이 곳의 소금이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옌징의 소금이 계속 생산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 난창강에 발전소가 곧 건설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윈난성과 티벳자치구는 옌징의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고려해서 염전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옌징 사람들이 소금 밭을 일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옌징의 소금 밭은 난창강의 물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인가

       
      세계의 지붕 티베트 창탕고원. 히말라야 산맥 북쪽의 해발고도 4,000m의 창탕고원은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땅이다. 10cm 정도의 관목만 드문드문 있을 뿐 풀도 잘 자라지 않는 척박한 곳. 그러나 이곳에는 신이 준 선물, 소금호수가 있다. 바로 짜부예차카. 먼 옛날 바닷속이었던 히말라야가 융기하면서 생긴 소금호수다.
      드록파 유목민들은 매년 초봄이 되면 그들이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보름정도 떨어진 소금호수로 길을 떠난다.
      짜부예차카는 하얀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그들은 이 소금호수를 ‘신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여자는 소금을 캐는 카라반이 될 수 없다. 티베트인들은 여자가 소금호수에 가면 소금이 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곳에 도착한 소금 카라반들은 야크 뿔로 덩어리진 소금을 깨서 100여 마리의 야크에 싣고는 다시 길을 떠난다
      매년 8월 드록파 유목민들은 채취한 소금을 가지고 히말라야 산맥 아래 중국 티베트와 네팔의 국경지대 교역 시장으로 가지고 간다. 1개월 정도 열리는 이 국제교역시장에서 소금이 거래된다. 예로부터 이 소금은 네팔, 인도, 부탄, 시킴까지 팔렸다.
      히말라야의 돌포파가 다시 이 소금을 싣고 히말라야를 넘는다.
      돌포파는 히말라야 산맥 서쪽의 깊숙한 산록에 자리잡고 사는 티베트족.
      이들은 겨울이 되면 히말라야 산록에서 살 수가 없다. 먹을 식량이 부족하고 야크에게 먹일 풀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소금 교역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다.
      11월, 돌포파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이들은 티베트에서 바꾸어 온 소금과 산 아래 남쪽에서 재배된 식량을 교환하기 위해 야크떼를 이끌고 눈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5,000m가 넘는 산들을 넘어 남쪽으로 떠난다.
      돌포파가 향하는 남쪽의 목적지는 산 아래 롱파 지역이다. 롱파지역은 기후가 따뜻해 여러 곡식을 재배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소금이 없다.
      그래서 돌포파는 가져온 소금을 롱파가 재배한 콩,옥수수와 바꾼다. 돌포파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다시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간다.


      티베트 서부, 히말라야 산맥 북쪽에 펼쳐진 불모의 대지.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이곳에서는 나무 한 그루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높은 흙벽을 겹쳐놓은 듯한 토림(土林)이 감싸 안은 계곡 속에서 거대한 석굴 유적이 발견되었다.
      수많은 석굴 내부는 유라시아 각지에서 유래한 벽화들로 가득 차있다. 돈황의 벽화를 떠올리게 하는 비천상. 페르시아 양식의 원형연주문. 인도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 그림들. 더욱 놀라운 것은 벽화에 많은 황금이 사용되었다는 것. 변경의 땅, 불모의 대지 위에 남겨진 선명한 색채의 벽화들. 이 곳에서 한동안 번영했다
      홀연히 사라져 버린 구게(古格)왕국의 전설이 되살아난다.

      설역 고원에 만개했던 토번왕조는 9세기 불교 탄압과 내부 갈등으로 분열되면서 왕국 자체가 붕괴한다.
      마지막 왕 랑다르마의 세 손자들과 유민들은 티베트 서부 카일라스 신산 주변으로 탈출하여 정착하고 일행의 일부는 카일라스에서 200km 서남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현지주민들과 연합하여 조그만 나라를 연다.
      그것이 바로 구게(古格)왕국이다.
      이렇게 시작된 왕국은 인도, 네팔, 티베트를 잇는 국제 교역의 중심에 서 있었고 10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600여 년간 16대 국왕을 거치며 번성하다가 17세기에 이르러 역사 뒤편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구게의 벽화는 주로 인도 후기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기존 불교 전파로인 실크로드 쪽에서 밀려오던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도 후기불교는 히말라야를 직접 넘는 새로운 전파로를 찾아낸다. 수세기 동안 어둠의 동굴 속에 숨겨져 있다가 모습을 드러낸 구게왕국의 동굴벽화는 인도 후기 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통제로 그동안 미공개로 남아있던 피앙 동굴, 통가 동굴, 토린사에 그려진 신비의 벽화를 통하여 인도 탄트라 불교의 진수를 공개한다.
       
      불모의 땅 티베트 서부 고원에서 구게왕국이 강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구게 왕국이 당시 국제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근의 인도와 티베트 접경지역 '푸란‘에서는 티베트, 인도, 네팔 상인들의 국경 교역이 활발하다.
      구게 왕국의 교역로는 서쪽으로 계속 이어져 인도에 이르고, 라다크, 훈두르를 통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실크로드와 합류한다. 해발고도 3,000미터에 나있는 신비의 교역로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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