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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특별기획 _ 김정일 3부작 : DVD 2Discs : 러닝타임173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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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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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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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상세정보


      <KBS특별기획 _ 김정일 3부작>


       


      구      성 : DVD 2Discs


         Disc 1 제 1편 - 유라 킴(YURA KIM)


                      제 2편 - 비극의 시작


         Disc 2 제 3편 - 최후의 선택


      런닝타임 : 173min


      언       어 : 한국어


      출  시  일 : 2012년 1월 13일





      지난 17일,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일이 급사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세계 최악의 독재자, 은둔의 통치자... 세계 언론은 37년간 북한을 이끌어 온 그의 이름 앞에 언제나 수많은 수식어를 붙여왔다. 그만큼 김정일의 실체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베일에 휩싸여 있어다는 반증일 것이다.



      인간 김정일 그리고 통치자 김정일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를 이해하는 것은 북한 권력의 작동원리와 김정은의 미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아버지 김일성을 내세워 오늘의 특징을 갖는 북한을 설계했고, 삼남 김정은에게 자신의 권력을 넘겨준 인물이 바로 김정일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KBS가 1년 6개월에 걸쳐 전 세계에서 김정일의 전 생애에 관한 새로운 증언과 영상을 발굴해 만든 바이아그래피 다큐멘터리다.




      <KBS특별기획 김정일 3부작> 김정일의 모든 것을 찾아서



      - 총 14개국, 24개의 도시에서 발견한 김정일의 흔적들


      김정일의 출생지인 러시아, 아버지 김일성의 항일투쟁 무대이자 한국전쟁 시기 김정일의 도피처였던 중국, 자녀들을 유학시킨 스위스, 김일성 운동장이 세워진 아프리카 등… 국내서부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스위스, 루마니아, 싱가폴, 아프리카 등에 이르기까지, 1년 6개월의 제작 기간 동안 전 세계에 있는 김정일의 흔적들을 모두 찾아 나섰다. 총 14개국에서 찾아낸 김정일의 흔적과 생생한 증언들!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정일의 출생, 가족생활, 심성, 여자관계 등 자세한 이야기를 취재했다.




      - 김정일 관련 미공개 사진과 새로운 증언들


      유년시절의 김정일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해준 이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씨는 김정일의 소꿉친구다. 그는 어릴 적 김정일과 함께 찍었던 사진 하나를 제작진에게 주었다. 흑백 사진 속에는 어린 김정일과 이 세르게이 씨, 그리고 김일성 등의 인물들이 함께 있었다. 지금껏 유년시절 김정일의 사진들이 세상에 여러 장 알려지긴 했으나 이 세르게이 씨가 갖고 있던 사진은 언론에 공개 된 바 없는 자료다. 이 세르게이는 사진과 함께, 김정일의 남동생의 죽음, 어머니 김정숙의 죽음과 학교 생활에 대한 흥미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일성 집안의 개인교사였으며, 김정일의 러시아어 과외선생이었던 전평양외국어대 김현식 교수가 들려주는 김정일의 학교생활, 성적, 인성 그리고 곁가지와의 경쟁과 승리과정에 대한 속 이야기는 김일성 집에 드나들던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홍콩에서 납치됐던 영화배우 최은희씨처럼, 그동안 인터뷰를 들을 수 없었던 인사들의 증언이 전편에 실려있다.




      - 사진과 동영상자료를 흥미롭게 표현하는 재연과 특영


      출생의 순간부터 현재까지 김정일의 일생은 수많은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그동안은 제한된 사진과 영상자료로 지루하게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주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지루함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김정일 프로그램은 중요 사건과 순간을 흥미롭게 표현하기 위해 1년 6개월 동안 발굴한 인터뷰와 사실을 토대로 엄밀하게 촬영된 재연과 특영화면으로 시각적으로 흥미롭게 시청할 수 있게 했다. 또 드라마 추노의 음악을 담당했던 최철호 감독이 음악을 맡았다.




      - 김정일을 보는 공정한 시각과 객관적인 평가


      남과 북의 대립과 대결,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과 공정한 시각으로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일대기를 담아냈다.









      <제1편 – 유라 킴(YURA KIM)>




      유리 일세노비치 킴, 출생의 비밀을 찾아서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백두산의 군대 내 막사에서 태어났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객관적 사실과 증언들은 김정일이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련식 이름 유라로 불렸으며, 아버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동지들은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해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정일의 이름은 ‘유라’입니다.


      당시에 세르게이, 유라, 발로쟈, 로만 같은 이름들은 모두 흔한 러시아 이름들이었습니다.


      - 이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 김정일의 소꿉친구



      1942년 2월 16일, 러시아의 혹한 속에서 김정일이 태어났던 장소를 일본의 역사학자 김찬정씨와 함께 찾아갔다. 빨치산 대원들 속에서 군가를 부르고 행진하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유라의 유아시절이 화면에 펼쳐진다.



      동생의 익사와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


      해방 후 평양으로 돌아온 김정일의 생활은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다섯 살 되던 해인 1948년, 관저에서 함께 뛰어놀던 한 살 아래의 동생 슈라가 연못에 빠져 사망했고, 그 다음 해에는 넷째를 낳던 어머니 김정숙이 숨을 거두었다. 김정일과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이 세르게이 교수는 슈라가 죽었던 당시의 상황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정일의 유년시절의 모습 중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과 함께 이 세르게이 교수를 만난다. 연달아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들은 어린 김정일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로 남겼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차지한 계모 김성애는 김정일과 나이차이가 14살에 불과했다. 이 시기는 김정일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시험 감독관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던 소년”


      한때 김정일의 러시아어 과외선생이었던 김현식 교수는 당시의 김정일을 ‘얼굴이 빨개지던 순진한 소년’ 이었다고 기억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대학에 입학한 김정일은 학교 내에서도 큰 이슈거리였다.



      ”로왈드! ‘유라’라는 학생이 입학했다는데 들었어?” “유라?”



      “‘유라’가 누군지 몰라?”하길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유라가 김일성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 당시 김일성종합대 학생 / 사벨리예프



      이시기 그는 영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심취했다. 현재 김정일의 영화 라이브러리에 보관된 필름은 약 1만 5천여 개,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 김정일의 영화사랑은 훗날 그가 후계자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북한의 주체사상 창시자인 故 황장엽은 자신이 보았던 17살의 김정일은 이미 권력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던 청년이었다고 증언한다. 수령의 후계자가 되기 전, 단지 수령의 아들이었던 시기의 김정일. 가까이서 그를 보았던 학생과 교수들이 말하는 젊은 김정일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우리는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젊은 김정일을 발견하게 된다.



      수령의 아들, 후계자가 되다.


      70년대 무렵, 북한의 곳곳에서는 외국 서적들과 외국 테이프, 음반 등을 태워 없애는 불길들이 일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부터 밤하늘 위로 수십 미터를 치솟으며 수천 권의 책들을 태워버린 불꽃.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후 당에서 활동을 시작한 청년 김정일이 진두지휘하여 만든 작품이었다.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였던 자를 개인숭배의 이유로 몰아 숙청하고, 아버지 김일성의 유일지도성에 거슬리는 것들을 제거하기 시작한 때였다. 60년대 후반은 김일성 이후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이 불꽃은 튀던 시기였다.



      어느 날부터 한명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수업 도중에 교무과에서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자, 어느 학생 나오세요’, 그러면 학생이 나가요. 그러고 또 한명이 없어지고,


      그해서 한 10일, 15일쯤 지나니까 흉흉한 소문이 도는데…


      - 고영환 / 전 북한 외교관




      그가 권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로부터 74년 마침내 서른둘의 나이로 세상에 당당히 등장하기까지 권력투쟁의 비화.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김정일의 행보가 밝혀진다.






      <2편 – 비극의 시작>



      젊은 지도자의 등장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기대


      1974년, 김정일은 당 중앙으로 불렸다. 패기에 넘치는 젊은 김정일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 초상 배지까지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공식 후계자가 된 첫해, 그에 대한 기대는 상당했었다.



      북한을 지배하는 최고의 원칙-유일사상 10대원칙 제정


      주민의 기대와 달리 김정일이 관심을 쏟은 것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한 1974년, <유일사상 10대원칙>이 북한에 실시되었다. 이후 <유일사상 10대원칙>은 전 북한주민의 삶을 24시간 지배하게 되었다. 김일성의 권위는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북한은 김일성 종교국가로 변해갔다.


      학교에서 시작된 ‘충성의 선서모임’, 전 국민이 참가하는 ‘생활총화’ 등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철저한 독재체제가 북한에 구축되었다. 김일성이 신격화 될수록 김정일의 권력도 절대화되었다.


      현재 북한 전역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동상은 약 3만 5천여 개나 된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북한 응원단은 비에 젖은 김정일 사진 현수막을 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외부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유일사상 10대원칙>이 어떻게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정일 밀실정치에 대한 증언들


      남한의 유명 여배우 최은희와 그녀의 남편이었던 영화감독 신상옥은 김정일의 말 한마디 때문에 홍콩에서 강제 납북된 후 평양에서 김정일이 주최하는 최측근들의 밀실 파티에 자주 참석했다.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또한 스시를 만들기 위해 최근거리어세 김정일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후지모토는 김정일의 부인 고영희는 물론 아이들과도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었다.


      황장엽의 생전 증언을 통해 파티에 대한 김정일의 평소 생각을 들어본다.





      김정일의 ‘통 큰’ 정치


      1980년, 북한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공개한다. 80년대 이후 세계 도처에 대한 북한의 대규모 군사 및 경제지원의 현장을 찾았다. 탄자니아공화국 잔지바르에 세워진 일명 김일성 스타디움, 마다가스카르 대통령궁, 짐바브웨 폭풍여단 창설에 대한 북한의 지원은 남한과의 또 다른 형태의 경쟁이었지만 북한경제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탄자니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 일입니다.


      탄자니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도 축하행사를 열고 싶은데 마땅한 경기장이 없다고


      경기장을 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더니 김 주석이 경기장을 선물로 주겠다고 했습니다.



      - 데이빗 / 곰바니 경기장 관리자



      ‘공화국 혁명수도’ 평양은 김정일이 주도한 거대한 건축물들의 전시장으로 변해갔다. 파리의 개선문보다 더 큰 평양 개선문과 세상에서 가장 높은 주체사상탑, 심지어 화장실 개수보다 많은 동상들이 세워졌다.


      김정일이 수립한 유일사상 10대원칙이 북한의 경제, 외교, 일상생활에 미친 영향과 결과들을 알아본다.



      1994년 김일성의 사망



      80년대 말, 냉전의 한 축이 붕괴하고 만다.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서곡에 불과했다. 동유럽의 형제국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처형되는 순간은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이 시기 김정일은 고립을 선택한다. 이 결정은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경제와 주민들의 삶에는 독이 되었다. 그리고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한다. 고난의 행군과 김정일 1인 통치의 시작을 의미했다.




      <3편 – 최후의 선택>



      김정일 처조카의 죽음


      1997년 2월, 한국의 한 아파트에서 김정일 처조카가 괴한이 쏜 총탄에 숨을 거둔다. 그는 피격 직전, 김정일과 로열패밀리의 비밀을 담은 책을 출판했다. 그가 밝힌 로열패밀리의 이야기는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베일에 싸였던 김정일의 가정사가 속속들이 알려지는 계기였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성장기, 첫사랑 성혜림에 관한 이야기는 북한체제에서 가장 감추고 싶은 비밀이었다.


      1997년 10월, 3년 간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 김정일은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되었다.



      강성대국 건설은 북한식 페레스트로이카였나?



      2000년이 되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했죠.


      아마도 강성대국이 되기 위해 경제건설을 하려면 외국에서


      기술과 자금을 유입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 와다 하루키 / 동경대 명예교수



      전 세계 공산권이 붕괴되던 시기 고립을 선택했던 김정일은 극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하며, 1960년대 남한의 박정희식 경제개발모델을 차용했다고 와다 하루키 교수는 해석한다. 북한 내부에서는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한반도내 위기를 줄이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정책을 시도했다고 하루키 교수는 평가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노력과 러시아 방문 그리고 역사상 최초의 북일정상회담은 북한식 개혁개방을 뜻하는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김정일의 전략이었으며 이시기 북한 내부의 경제상활도 제한적이지만 상당부분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시기 북한의 활발한 시장모습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포스트 김정일은 누구인가


      2000년대 들어 북한에 관한 관심사는 세 아들 중 누가 김정일의 뒤를 이을 것인가였다.


      사람들의 다양한 추측들 속에 장남의 탈락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찾아왔다. 2001년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던 김정남이 강제 추방당하고, 이 사실은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1년 후,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이 모스크바에서 쓸쓸히 사망한 후 김정남은 지금까지 해외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 후 새로 주목 받은 아들은 차남 김정철과 삼남 김정은이었다.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고영희가 우상화되기 시작했다.


      다.




      장군이 지금부터 내 아들들을 소개하겠다면서 연회장으로 가자고 해서, 장군 뒤를 따라갔습니다.


      형인 김정철, 동생인 김정은씨. 그리고 그 뒤에 고영희부인이 서 있었습니다.


      9세, 7세 아드님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 후지모토 겐지 / 전 김정일의 요리사



      김정일의 후계자 물망에 올랐던 세 아들들의 행적을 추적했다.



      실패한 강성대국의 꿈


      개혁개방은 김정일체제를 불안케 하고 지금의 북한체제로는 개혁개방을 이룰 수 없는 딜레마에서 김정일은 벗어날 수 없었다.



      김정은, 김정일 최후의 선택


      2010년 9월 27일 조선노동당 대표자 회의. 27세 젊은 청년이 ‘대장’ 칭호를 받으며 세상에 등장한다. 김정일의 선택은 막내아들, 삼남 김정은이었다. 현대사에 전례 없는 3대 세습. 32세의 나이에 후계자로 등극했던 김정일보다 더욱 어린 나이에 후계자로 공표된 것이다.



      다들 김정은 모습 보고 다 놀랐거든요. 김일성이가 환생한 것 같다고 북한 사람들은 많이 울었구요.


      그러니까 스물여섯 살짜리 내세울 거 없는 사람한테 씌울 수 있었다는 것은 일종의 아바타죠.



      - 고영환 / 북한 전 외교관



      김정은의 모습은 함께 베른에서 유학한 형 정철과는 사뭇 달랐다. 둘 다 농구를 좋아했으나 경기 스타일은 전혀 달랐던 두 형제. 수동적이고 패스를 잘하던 형 김정철과 공격적이고 승부욕이 강했던 동생 김정은. 국제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창생들 통해 김정은의 면모를 알아봤다.



      김정일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북한의 미래


      2011년 12월 17일, 37년간 북한을 통치했던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했다. 북한의 미래는 어떠한 길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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